깨달음너머 '화엄(華嚴)'의 의미와 심판론적 인과응보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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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상천리 작성일 26-08-31 13:25 조회 120 댓글 0본문

화엄탱 (通度寺 華嚴幀) Buddhist Painting of Tongdosa Temple (Illustration of the Avatamsaka Sutra)
흑칠 바탕에 금가루를 사용하여 그린 흑탱화로, 「화엄경(華嚴經)」의 칠처구회(七處九會)의 내용을 그린 변상도로, 「80화엄경」의 복잡한 내용을 천상을 의미하는 상단과 지상을 의미하는 중·하단의 3단으로 나누어 간단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단에는 새롭게 천수관음(千手觀音)과 준제관음(准提觀音) 및 업경대(業鏡臺)를 배치하여 도상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림에 대한 내력을 적어 놓은 기록에 의하면, 조선 순조 11년(1811)에 승려화가인 천수(天守)·관보(琯甫)·승활(勝活)·지한(智閑)·성의(成宜) 등에 의하여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통도사 화엄탱은 비록 그림 일부의 훼손이 있기는 하지만 각 장면을 표기해 놓아 전반적인 도상의 이해에는 별 지장이 없으며, 필력이 매우 치밀하고 섬세하여 수작으로 평가된다. 또한 1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시기가 뒤떨어지긴 하나 예가 그리 많지 않은 것 중의 하나이며, 새로운 도상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화엄(華嚴)'은 '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한다'는 뜻의 잡화엄식(雜華嚴飾)에서 유래했다. 아름다운 꽃들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정원을 이루듯, 우주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부처님의 진리 세계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화엄은 구도자가 만행, 만덕을 닦아 그 결실을 장엄하게 나타내보인다는 의미다. 여기엔 단계적 오류시정의 원리 곧 피드백의 개념이 있다.
그러니깐 화엄은 거대한 하나의 세계이다. 어떤 선이든 혹은 어떤 악이든 그 시, 공간적인 거대함 안에서 전부 용해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화엄의 관점에서는 전략적 행위도 용서가 되고, 의도적인 실수도 용서가 된다라고 보면된다. 그러므로 화엄에는 융통성이 있다. 기독교적인 편협함의 관점에서 볼 때 자칫 석가의 <인과응보>의 논리를 잘못 이해하면 기독교의 <심판론>과 유사한 복수설이 될 수도 있다.
화엄(華嚴)은 부분과 전체의 논리, 생명체와 같은 유기적인 상호관련성의 논리,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과정을 수용하는 피드백의 논리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화엄(華嚴)은 부분과 전체의 논리, 생명체와 같은 유기적인 상호관련성의 논리,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과정을 수용하는 피드백의 논리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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