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눈으로 보는 관상과 신언서판 > 두문골 전옥서(典獄署)

본문 바로가기
  • 회원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 접속자 34
사이트 내 전체검색

두문골 전옥서(典獄署)

dab3c0271b971961988b5479f8ab13eb_1785991651_4971.jpg
 
'신언서판(身言書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생긴대로 놀며, 절대 변하지 않는다" - 『두문골 수용소장 백』


공지
과학의 눈으로 보는 관상과 신언서판
작성일 : 2026.08.04. 07:20 수정일 : 2026.08.06. 13:54
profile_image
수용소마개비

29f5d1bf7d25c9a33b1ca1517306900d_1785799803_66.jpg
 '보자...누가 왕이 될 관상인고? 죄다 찌가다비상들이 아니겠노..이래서야..'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용모, 언변, 글솜씨, 판단력 등을 기반으로 하는 인재 등용 기준’을 의미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이 은연중에 나타나기 때문에 자신의 신언서판은 자신이 냉철하게 분석해 올바르게 정립해 나가야 한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용모, 언변, 글씨, 판단력 등의 인재 등용 기준’을 의미한다.
 

d5a011d1b593f867a4764281bbb09615_1785816906_3372.jpg
당태종의 인재등용책 '신언서판'|
 

신언서판의 유래는 중국 당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 태종은 기득권 세력을 견제하고, 널리 인재를 등용하고자 과거제도를 실시했다. 과거제도는 천자의 권한을 강화시켜 주고 인재를 얻을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었다. 이에 당나라에서는 과거제도를 엄격하게 실시하여 천하의 많은 인재를 얻었다. 그러나 당 태종은 과거에 급제한 인물들을 바로 등용하지는 않았다. 


신언서판이라는 네 가지 선정기준을 마련하고  인물됨을 평가한 후 관리로 등용했다.  


신언서판에서,

신(身)은 외모를 뜻한다. 신체에서 풍기는 진정한 의미의 풍모 말한다.

언(言)은 언변을 뜻한다. 말을 함에 있어서 이치에 맞고 자신을 올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솜씨를 의미한다.

서(書)는 글씨다. 글씨는 곧 자신의 인격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판(判)은 판단력이다.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언서판은 사람의 내면세계와 외면세계를 평가하는 판단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 만큼 신언서판은 훌륭한 인재를 선발하고, 관리를 임명하는데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고려 광종 때부터 과거제도를 실시했다. 광종 역시 호족 출신의 공신세력을 누르고 충성스러운 문신관료를 얻기 위해 과거제도를 실시했고, 신언서판은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조선시대 또한 유교사회였기 때문에 인재를 등용하는데 신언서판이 더욱 중요시되었다. 


이러한 영향은 요즘도 변함이 없다. 


누구나 처음 대하는 사람은 먼저 얼굴이나 풍채를 보고 그 사람됨을 평가하게 된다. 그리고 말소리를 들으며 그 사람의 내면의 세계를 파악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잘생겼다. 영특하다고 하는 것도 신언(身言)을 판단 기준으로 삼고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신언서판이란 판단기준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이 신언서판은 요즘 기업체 채용시험에서도 잘 적용되고 있다. 물론 컴퓨터가 발달한 현대는 인터넷을 통해 회사에 입사원서를 내고, 합격여부를 통보 받기도 한다. 진정한 의미의 신언서판이 간과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도 대부분의 기업체들은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관상을 보는 사람을 앉혀놓고 면접을 보는 기업체도 있다. 이것이 바로 현대판 신언서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신언서판은 자신이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이 은연중에 몸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신언서판은 자신이 냉철하게 분석하여 올바로 정립해 나가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조선의 과거제도와 신언서판(身言書判) 

○과거시험의 종류
: 문신(
文臣)을 뽑는 문과, 무신(武臣)을 뽑는 무과, 기술직을 뽑는 잡과

 

0c5512439206a3714cd14aeaa8443d4b_1785904773_6192.png
 

과거시험 문과(文科): 소과 2단계 (초시, 복시)와 ②대과 3단계 (초시, 복시, 전시)로 나뉘어져 총 5단계를 통과해야 급제 할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응시자(양반)들은 5세 때부터 하루의 대다수를 학업에 투자하여 평균 30년을 공부하였다. (문과 최종 급제자 평균연령 35)
 

○응시조건

죄를 범하지 않은 양인 남성이라면 누구나 응시가 가능(이는 세계적으로 드문 제도로 유럽의 귀족사회, 고려 시대의 음서제로 지위를 세습하는 것에 비교해보면 굉장히 공정하고 평등한 관리 등용 제도였음), 고위직은 불가했다고 함.

○과거시험 과목

유교 경전인 <사서삼경>, 역사서 <사기> <통감>, 문학서 <한시>, <송시>, <당시>까지 통달해야 하며 한문 문장 실력은 기본이다

조선의 과거 합격은 개인의 영광은 당연한 것이오, 가문의 명예, 고을의 영광인 것이다. 또 과거 합격의 의미는 유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과 효()를 실현하는 것이다. 관직에 나가 나라에 헌신할 수 있으므로 충의 실현, 가문의 명예와 부모를 봉양할 수 있으므로 효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대과의 마지막 시험인 전시 문제는 왕이 직접 출제했다. 책문이라고 불리었으며, 이에 대한 답안을 대책이라고 불렀다. 책문은 주로 왕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안을 출제했다. 이에 대책문은 동서고금의 학문을 인용해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서술했다. 이를 비추어보면, 과거 합격은 단순 암기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최종 급제자의 수는 33명이며, 시험은 3년마다 시행되었다.
마지막 시험인 전시는 급제자의 서열을 가르는 시험으로 지금 사법연수원에서 성적 순으로 임용권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0c5512439206a3714cd14aeaa8443d4b_1785904883_3795.jpg
 

과거시험 대과 시험과정

관시(
館試): 조선 시대 성균관에서 실시하는 문과 초시를 이르던 말(성균관9년이면 대과 응시가능)

한성시(漢城試): 조선시대 한성에 거주하는 유학관원으로 문과·생원시·진사시의 초시(4부학당)

향시(鄕試): 조선시대 각 도에서 실시하던 문과·무과·생원진사시의 응시할 때 맨 처음 보는 시험(향교, 서원)

0c5512439206a3714cd14aeaa8443d4b_1785904909_1072.png

과거시험 최연소 급제자는 15세 이건창(1866)

과거시험 최연소 장원급제자는 17세 박호(1584)

과거 시험 최고령 합격자는 83세 박문규(1887)이다.

장원급제자들의 답안지는 평균 길이가 10m였으며 앞면은 물론 뒷면까지 빼곡히 적혀있었다.(가장 긴 답안지 12m)

과거시험은 극히 어려운 논술형이었다.

 

과거시험 최고의 천재는 이율곡(李栗谷)이다.
 

이율곡은 22세부터 과거시험에 9번 응시하여 9번 모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

원공'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특히 1556년 별시에서 당대 학자 수백명이

몇 달을 고심하여 만든 문제를 단 3시간만에 천도책이라는 제목으로 답안을

작성해 감독관들을 놀라게 하였다.


 

0
0개의 댓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산채 후원사 보급지원 배너]
 

duan.jpg

 

logo
Copyright © dumun.com. All rights reserved.